스마트 글라스의 진짜 경쟁 상대는 일반 안경
스마트 글라스의 UX 딜레마… 사람들은 컴퓨터 안경을 쓸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리스 신화’에 보면 웨어러블 기기 이야기가 나온다. 크레타 섬에서 탈출하려는 이카루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엮어 날개를 만들고 밀랍으로 몸에 붙였다. 환상적인 꿈을 꿨다. 그런데 창공에 솟아오르자 뜨거운 태양을 만났다. 결국 밀랍은 녹고 이카루스는 날개를 잃었다. 첫 번째 웨어러블 기기는 이렇게 수장됐다.
새벽빛에 축포를 쏘는 격이라고나 할까. 십여 년 전 홈네트워크가 그랬고 천문학적으로 돈을 부어넣은 로봇공학도 그랬다. 보지도 않는 스마트 TV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테크 트렌드에 무수히 속아 왔다.
왜 하필 스마트 글라스인가?
최근에 웨어러블에 대한 논의가 산업과 학계에서 뜨껍지만 한 발 정도 물러나서 차분히 보고자 한다. 그래야 이지현 서울여대 교수가 강조하는 일상 속에 녹아 들어가는 사용자 경험(UX)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우선 스마트 글라스에 초점을 맞춰 본다.
우리 기업은 하고 많은 웨어러블 중 특히 스마트 글라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구글 글래스의 공로지만, 사람들은 적절한 웨어러블 기기로 스마트 시계와 스마트 글라스를 꼽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얼굴은 인터페이스(UI) 역할을 하는 곳이기에 시각·청각·촉각 정보를 이용하기 쉽고 입과 손도 자유롭다. 특히 뇌·얼굴동맥·안면근육·목소리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여타 웨어러블에 비해 스마트 안경의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만수 LG전자 신사업기술 전략팀장은 구글이 이런 목표보다 눈과 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미래를 생각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1945년 베네버 부시 라이프 매거진에 첫 등장한 스마트 글라스는 최근 구글 글래스를 필두로 메타뷰·오캠·레콘젯·인스타빗·모토로라HC1·이온 등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 중 HC1을 제외하고 안정적으로 상용화된 예는 아직 드물다. 우리나라도 뒤지지 않는다. 아큐픽스와 그린광학이 오래전부터 제품화했고 몇 주 전에는 삼성도 스마트 글라스 디자인 특허를 취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구글 글래스의 홍보 영상은 우리나라 9시 뉴스에 소개될 만큼 파괴력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카루스의 환상을 느낄 수 있다.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안경을 쓴 독자라면 오른쪽 안경 위쪽에 손가락을 대고 쳐다보고 앞을 보고 한 10번 정도 해보라. 아마 10번을 다하기도 전에 어지럽기 시작할 것이다. 한쪽 눈을 이용하는 단안 디스플레이의 건강과 사용성 문제는 인간공학과 인지과학에서 1980년 말부터 진행돼 왔고 심지어 40여 시간 정도 사용하면 사시가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박만수 팀장은 구글이 스마트폰에 육박할 정도로 시각 중심이어서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튜브에 있는 실제 사용자의 동영상을 보면 구글의 바람과 달리 스카이다이빙 같이 스포츠광들의 유별난 장면에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스마트 글라스가 가진 대표적인 사용자 경험 문제를 정리해 보면 첫째, 인간의 시지각 및 인지 시스템과 맞지 않아 작게는 어지러움부터 시작해 카멜레온의 눈 같은 사시 유발, 주의 및 판단의 오류와 방해. 둘째, 배터리·음성인식·통신·발열 등의 기술적 미완성. 셋째, 무게와 착용감. 넷째, 비디오 촬영에 따른 사생활 및 인권 침해 등을 꼽을 수 있다. 다섯째, 패션 아이템이나 룩앤필의 심미성. 여섯째, 쉬운 조작성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점을 해결하면 사람들이 컴퓨터 안경을 쓸까. 이런 UX는 스마트 글라스가 사람들에게 수용된 후에 하는 개선용 UX다.
지금은 불을 지펴야 하는 상황일까. 기름을 부어야 하는 상황일까.
현시점에서 최고경영자(CEO)가 고민해야 하는 비즈니스 전략으로서의 UX는 ‘과연 사람들은 지금 컴퓨터 안경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며, 즉 ‘어떻게 해야 스마트 글라스를 쓸 것인가’다. 다시 말해 결국 스마트 글라스는 업의 정의가 필요하며 이는 ‘진정한 경쟁자가 누구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결국 안경은 필수, 스마트 글라스는 옵션
스마트 글라스의 경쟁 상대는 일반 안경이다. 왜냐하면 스마트 글라스가 있고자 하는 곳에는 이미 안경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둘 중의 한 명꼴로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있고 미용을 위해 착용하는 이까지 포함하면 조금 더 많아질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 사용자 수와 엇비슷한 정도다. 따라서 이들의 안경을 벗겨내고 스마트 글라스를 쓰게 하든지, 아니면 현 안경에 덧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웨어러블을 스마트폰의 세컨드 디바이스라고 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이런 접근에 대해선 좀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안경을 쓸까. 어떻게 안경 시장이 발전하고 사람들은 어떤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안경 구매 과정을 보면 사람들은 안경테를 고르는데 가장 오랜 시간을 쓴다. 그러고 나서 시력 교정용 안경알을 맞춘다.
즉 안경은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쏟는 고관여 제품으로서, 기본적으로 시력 교정을 위해 쓰지만 자아를 표현하는 사회적 패션 아이템이다. 우리는 안경테만 봐도 이 사람이 얼마나 보수적일지, 고루할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시장에서는 시력 측정 전문성을 강조하는 다빈치안경원과 ‘안경은 패션이다’를 강조하는 룩옵티콜 계열로 분류된다. 스마트폰에 비해 기술 집약도가 낮지만 시력 교정과 패션이 현재 안경에 강하게 작용하는 ‘지름신’이다. 나대열 SK텔레콤 UX팀장은 이런 점에서 웨어러블의 패션성을 강조한다. 물론 이 밖에도 사용자들은 현재 거리를 중심으로 시력을 교정하는 안경에 다양한 불만을 제기한다.
어쨌든 안경이 이 정도 상황이라면 아인슈텔룽 효과(Einstellung effect) 때문에 사람들의 습관과 신념 체계에 맞설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스마트 글라스가 안경이란 필수품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점에서 평범하게 보이는 이온의 글라스와 빼기 전략이 돋보인다. 이와 함께 절장보단(絶長補短)으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 글라스가 일반 안경을 넘어서려면 결국 긴 것을 자르고 짧은 것을 보충하듯 절장보단으로 ‘스마트 글라스에서 새 희망’을 줄 수 있는 서비스가 나와야 한다. 예를 들어 안경으로는 불가능하면서도 기억과 학습, 건강관리 같이 개인의 지각과 인지를 강화해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개인화된 서비스다. 둘째, 사람들과 연결돼야 한다. 이를 통해 타인이 나를 생각해 주고 존경해 주고 사랑해 주는 자존감 강화 서비스가 만들어져야 한다. “어제 참 멋지게 달리던데. 운동복도 멋있더라!”가 오고가야 한다. 그리고 스마트 글라스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가치 체계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겪고 있는 일이지만, 예를 들어 스마트 글라스로 수능 시험 문제를 ‘도촬’한다거나 새로운 관점의 음란물을 만들었다. 즉 우리의 현존 가치관과 법질서에 도전하는 대리시험·대리수술·대리변호·대리여행이 등장하게 된다.
결국 이런 충돌을 리딩하는 사고의 변화를 통해 협동시험·협동수술·협동변호·협동여행 같은 긍정 가치로 만들어 내야 한다. 마치 페이스북이 그랬고 레이디 가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 들어온 지 불과 4년밖에 안 됐지만 이미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스마트 글라스의 불은 지펴졌다. 누군가 기름을 붙는 UX를 하는 이가 이기지 않겠는가.
한경메거진 제 938호 (2013년 11월 18일)
출처 : https://uxsymphony.wordpress.com/2013/12/23/smartglasses/
2014/09/19
나쌤